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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헤르츠 고래들 – 가장 외로운 주파수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노래

by 오!해피 2025.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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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의 은유

실존하는 52헤르츠 고래는 일반 고래들과 달리 52Hz라는 독특한 주파수로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동료들과 교감하지 못한 채 바다를 헤엄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별칭은 곧 현대 사회의 고독을 상징하는 메타포가 되었습니다.

마치다 소노코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루시마 이즈루 감독의 영화 <52헤르츠 고래들>은 이 고래의 고독을 인간의 상처와 치유 과정에 투영합니다.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키코가 자신과 닮은 고통을 가진 어린 소년을 만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현대인의 소외와 연대에 대한 깊은 사유를 던집니다.


스기사키 하나 – 상처와 생존을 연기하다

영화의 중심은 단연 스기사키 하나의 연기입니다. 학대와 돌봄 노동으로 점철된 과거를 가진 키코는 단순히 불행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스기사키 하나는 그녀를 내면의 강인함을 간직한 ‘생존자’로 그려냅니다.

특히 눈빛과 표정의 작은 떨림을 통해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장면들이 돋보입니다. 상처를 공유한 소년을 만났을 때의 복잡한 동요,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를 덮칠 때의 불안, 그리고 조금씩 회복되는 자아의 과정까지. 그녀의 연기는 관객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시손 쥰과의 케미스트리

시손 쥰이 연기한 안고는 키코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구원자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키코의 52헤르츠 울음을 유일하게 포착하는 인물로,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정서적 유대의 상징이 됩니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되는 관계’라는 특별한 연대감을 보여줍니다. 특히 52헤르츠 고래의 소리를 함께 듣는 장면은 영화 전체 메시지를 압축하는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될 만합니다.


연출과 공간 – 따뜻함과 냉정함의 균형

나루시마 이즈루 감독은 무거운 주제를 절망에 매몰되지 않게 다룹니다. 카메라는 외로운 이들을 포착하면서도 그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합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오이타의 바닷가 집은 키코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테라스는 그녀와 52헤르츠 고래의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고독과 희망이 교차하는 무대가 됩니다. 키코의 뒷모습과 함께 바다가 펼쳐지는 롱숏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남습니다.


교차되는 시간, 겹쳐지는 기억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키코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퍼즐 조각처럼 배치된 구성은 관객에게 몰입과 해석의 재미를 줍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선택과 교차되며, 어린 소년을 향한 즉각적인 공감이 더 큰 울림을 갖게 되는 방식은 특히 효과적입니다. 트라우마가 단절된 기억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을 미치는 생생한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음악과 사운드

밴드 사우시독(Saucy Dog)이 부른 주제가 〈Along the long journey〉는 영화의 정서를 완벽히 뒷받침합니다.

“딱 한 명, 내 목소리를 들어준 사람이 있었어”라는 가사는 고래와 인물들의 메시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또한 바다의 잔향과 저음, 고래 소리를 연상시키는 사운드 디자인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며 몰입감을 강화합니다.


현대적 의미와 사회적 메시지

52헤르츠 고래는 이미 BTS의 〈Whalien 52〉,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에서도 언급된 현대적 상징입니다. 영화는 이를 활용해 가정폭력, 아동학대, 돌봄 노동이라는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단순 고발이 아닌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한국 관객들에게도 이러한 맥락은 매우 현실적이며, 영화가 국경을 넘어 울림을 주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점

  • 치유 과정의 성급함 : 중반 이후 갈등 해결이 빠르게 진행되며, 키코의 내면적 회복 과정이 좀 더 세밀하게 묘사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소년 캐릭터의 한계 : 키코의 과거와 대조를 이루는 중요한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배경과 심리가 다소 도구적으로 그려집니다.

결론 – 외로움 속에서 찾는 연대

<52헤르츠 고래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현대인의 고독과 상처를 깊이 있게 조명한 수작입니다. 고래의 울음을 은유 삼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듯한 우리의 외로움에도 분명히 귀 기울여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13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이 메시지에 있습니다.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2025년을 대표할 만한 감성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 별점: ★★★★☆ (4/5)
👉 추천 대상: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 조용한 감정 드라마를 좋아하는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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